2012. 11. 25일 일요일
산에 가려고 굳게 맘먹었다.
천왕봉..
온전치 않은 컨디션으로
백무동에 섰다.
사람하나 없는 마을
저아래 계곡물소리가
춥다.
죽기 전날까지 산을 다니고 싶은 나에게
2달 반이란 시간은 긴 시간이었다.
지난 여름
산이 좋아
산에 오르고
그것도 모자라
매주 산에서 자다보니
허리와 몸에 무리가 갔는가 보다.
걷기조차 힘들었었다.
정형외과의 수술권유를 뿌리치고
근신한지 2개월 반
마음만은
천왕봉이라도 단숨에 오를 듯한 자신감이 생겨
하동바위길을 오르고 있다.
오늘 가는 이길
어쩌면 난 아무렇지 않다는걸 우기고 싶었을거다. 맘 한구석은...
참샘에서 다시 시작되는 오름 길.
서너차례나 쉬고 도착한 참샘은 물이 말랐다.
처음 본 것 같다.
물이 없는 참샘은..
한무리의 젊은 친구들이 우루루 올라왔다.
2030산악회.
산에 오는 젊은 친구들이
참 예쁘다.
풋풋한 젊음이 보기좋다.
젊은이는 다 좋고
다 이쁘다.
있는 힘을 다해 걸어도
그들의 속도를 이길수는 없었다.
하나 둘 추월해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길을 내주고 소지봉에 앉았다.
난 언제나 젊고 나의 젊음은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며 살던 자만의 세월.
20여년이란 세월.
< 너희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중에서
망바위가 멀다
아니 거리는 그대로 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아까 참샘부터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50여미터 앞에서
휘파람을 낮게 불며 올라가는 산객
훤칠한 키
하늘색 남방
아디다스 운동화.
.
.
.
그런데 갑자기 발길을 돌려 내려오신다.
날 지나치시며 하시는 말씀
"70넘은 할배가 아이젠도 없이 오르는것은 무리야!!
아이젠 신고 다음에 다시 올라야겠어"
그랬다
백발의 머리에 두른
머리띠가 멋있던 어르신이었다.
뒤통수를 맞은듯 멍한 내 시야에서
그 어르신은 그렇게 내려가셨다.
악을 쓰고 인내하며 정상으로 오르는 것하고
현실을 인정하고 과감히 내려서는 것 하고
어느것이 더 힘들고 어느것이 더 큰 용기일까?
이제부터라도 나의 젊음을 낭비하지말고
아끼고 아끼며 온몸으로 즐겨야겠다.
망바위에 닿을 무렵
오른허벅지에 쥐가 난다.
뭐야~~!
천왕봉은 아직 멀은데.
차라리 잘됐다.
다리 핑계로 쉬면서 즐기면서 가야겠다.
피할수 없으니 즐기는 수밖에........
멀리 남덕유를 당겨보았다.
난 산을 빨리 오르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날렵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할 필요성 또한 느끼지도 못한다.
천천히 걷다보면
온몸으로 다가오는 산이보이고
다람쥐가 보이고
계곡이 보이고
비로소 내가 보인다.
이런 오름길은
혼자라야 좋고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산을 오를때는 서넛이 좋다.
혼자 가는 길은
쫒기지 않아 여유로워 좋고
박배낭을 메고 오르는 길은
산을 오래 즐길 수 있어 좋다.
도깨비 불마냥 이산 저산을
순식간에 휘익 돌아 오는 사람들에게
능선길의 바람 맛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볼때 느끼는 그 뿌듯함
정상에서 펼쳐지는 끝없는 산너울
하늘과 구름들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다 내려간
고즈넉한 산정에서
혼자 맞는
아늑함과 편안함.
장터목 산장 가는 길
올 가을 처음 밟는 눈이다.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간다
날씨가 참 맑다.
저 만복대에도 누군가 쉬면서 이곳을 보고 있겠지....
저 곳을 보고있는 나 처럼..........
11시 30분, 3시간 반만에 기진맥진 장터목 도착
하동방향이 시원하다
사천방향
진주방향
아픈 허벅지 주무르다 저 모습들에 발길을 멈추어 버렸다.
눈이 없는 천왕봉을 허벅지 핑계로
산장 우체통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4천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원두커피
에이스크래커를 안고서
2시간 가까이 머물렀나보다.
평생을 산에 다녀야 할 나에게
이만큼만 아픈허리와 몸뚱이는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평생을 다니라고
뛰지말고 오래 다니라고
경고를 준 듯하다.
산에 이렇게 혼자 있으면
한없이 편안하다.
또한 눈물나는 감동이다
그 편안함과
그 감동 때문에 난 산을 오른다.
올 겨울엔 눈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