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능선상 이름없는 한 봉우리
언젠가 가을 단풍과 상고대가 아름답던 날
혼자 잔을 기울이며 다짐했었다.
이 전망좋은 봉우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그리고 서너해가 갔다.
광점동
온갖 세상일은 여기에 내려놓고....
좋은 형 동생과 산으로 간다.
세상 머리아픈 일은 광점동에 두어 가벼우니
그 무게는 배낭속에 술로 채웠다.
전날 내린 비로 허공다리골 옆에도 폭포가 생겼다.
카메라 배터리를 빵빵히 충전했는데
카메라만 가져왔네.ㅠㅠ
(그래도 부족하나마 스마트폰이 있어 다행이다,불편하지만 나름대로 쓸만하다)
허공다리골은 으름장을 놓는다.
오지 마라고.........
어름터 가던 그 에뻤던 길은 온데간데 없고
다행히 각자는 온전해서 반갑다.
땀 한번 흘리고 도착한 어름터
독가는 황량하고
엄청난 계곡물소리가
빈 마을터를 더 을씨년 스럽게 만든다.
다리 짧은 사람은 등산화를 벗었고
더 짧은 사람은 바지도 벗었고
혜택받은 신체구조를 가진 사람은 수월하게 건넌다.
짧은 사람은 언제나 부산하고 바쁘다.
향운대로 가는 길은
건계곡으로 기억하는데
전날 내린 비로
폭포와
거센 물줄기가
계곡을 버릴때까지 이어진다,고도 1천이 넘어도...
사람의 기억이란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한다 하더라도
10여년전 프록켄타님, 만복대님을 만나 처음 비지정이란 곳
오늘 코스를 거꾸로 온 길인데 전혀 기억이 없다.
그래도
망각이 있어
오늘을 살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향운대에서 물을 뜨려던 계획은
잠깐의 오판으로 향운대를 지나쳐 물건너 가고
가까운 곳의 물소리를 찾아 각자 수낭을 채운다
(사실 향운대의 식수사정을 확신하지도 못했다)
불과 3킬로를 더한 무게가
잠자리를 찾아가는 발걸음을 천근 만근으로...
내가 기억하는 잠자리와
<정재>가 염두한 잠자리가 달랐다는 걸
잠시후 깨닫지만
내 고집은 안 꺾인다...........
두류능에 올라 바라본 천왕봉과
시원한 초암릉
그리고 능선들이 장쾌하다.
20여분을 더 올라 도착한 잠자리
찐득한 땀을 훔치며 배낭을 벗어 던지고
자리에 앉았다.
옹색한 봉우리지만
2~3명이 하룻밤 보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능선으로 흐르는 구름과 바람
아늑한 국골의 물소리
올라오며 겪었던 고통은 저 구름처럼 어느새
스러지고
한잔술에 감흥은 더한다.
오길 백번 잘했지.!!
아~! 좋다.
해가 저물고
두류눙선 넘어 바래봉과 덕두산이 정겹다.
초라하지만
든든한 둥지를 만들고
촛대처럼 뾰족한 정상(약1550m)은 2인용 텐트 한동 칠 수 있는 곳과
셋이 술을 권할 공간이 옆에 따로 있다.
(봉우리에서 국골사거리는 50여미터)
어둠이 내리면
딱히 할이이 없다.
조촐한 안주에 잔을 기울이며
양희은의 "한계령"을 듣는다.
소름이 돋을만큼
좋은 밤이다.
반달은 제석봉위에서 수없이 숨바꼭질을 하고
함양읍과 양정마을엔 야경이 펼쳐졌다.
♪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
.
달이 주능선 넘을때 까지만 있어 보자 했는데
아무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렇게 아쉽게
바보같이
그 아늑하고 좋은 밤을
보내버렸다.
아침
무거운 구름이 머리위에서 머무는데
만복대에서 덕두봉까지 서북릉이 선명하다.
이 향연은 아침내내 이어지니
남겨둔 커피가 반가울 수 밖에..
텐트안에서 뭉기적 대던 정재가
"제 것도 좀.........
하니.
성현 형 왈.
이놈아 !
집나간 놈 몫은 있어도
늦잠자는 놈 몫은 없는거여.!
동부능선과 멀리 필봉산
함양방향
독바위
정상의 잠자리...
정상의 정재
내려가자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이친구는
저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올 가을은 조금만
앓고 싶다.
* 산행일 : 2012. 8.25 ~ 26
* 산행코스 : 광점동 - 어름터 -두류능선(박) - 청이당터 - 절터 - 광점동
* 동행 : 성현 형, 정재, 나.
PS : 주능과 기타 야영내지 비박장소 주변을 보면 과연 산꾼들인지 아쉬울때가 참 많습니다.
두류능선은 그렇지 않아 참 좋고 쾌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