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4. 26
* 구례 오산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오산과 사성암
문척면 죽마리에 위치해 있는 해발 531m의 호젓한 산으로 자라모양을 하고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굽이치며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읍, 지리산 연봉들을 볼 수 있다. 정상에는 사성암 암자를 중심으로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낙조대, 신선대 등 오산이 자랑하는 12비경이 있다.
‘오산을 오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고 두 번 다시 가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성암 부근의 기암괴석이 어느 산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물줄기 또한 일품이기 때문.
정상에 자리한 사성암은 기암절벽에 지어져 그 독특한 건축양식에 관광객의 감탄을 자아내며, 기도의 효험 또한 높다하여 최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원래는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4명의 높으신 승려인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가 수도하였다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 사성암에서 약간 내려와 50m 정도 남쪽으로 돌면 높이 20m가 넘는 벼랑의 암벽에 약사전이 있으며, 그 안 쪽 암벽에 부처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이 마애여래입상(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20호)이다.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세겼다고 전해지며, 전체높이는 3.9m로, 주형거신광배에 두광이 있으며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다. 얼굴의 모양은 원만하며 눈과 양미간, 코, 입 등은 선각으로 간략히 나타냈으나, 그 기법은 옛 전통을 따랐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사성암 주차장
몇년전 사성암에 처음 왔을때는
급경사길을 타고 승용차를 몰고 올라왔는데 무척 한가하고 조용한 절이었다.
몇년전 드라마 촬영지의 배경( 추노, 토지)이 되면서 유명세를 탄듯 하다.
개인 차량은 통제되고 마을버스와 택시가 손님이 차면 오르내린다(1인당 택시2천원, 버스1,700원)
활공장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구례읍내
백패킹에 무게가 실리면서 오산을 생각했었다.
접근이 쉽고 조망이 뛰어나고 비박지는 조용하다.
잠정적으로 오산 정상을 넘어 2백여미터 지점이 2만5천분의 1지도상 평지가 보였다.
오산을 오르며
오산은 사성암을 거치지 않고 활공장과 샘터를 지나 접근한다.
샘터는 물이 있으나 청소가 안돼 먹기간 곤란하다.
좌선대
옛날 4명의 스님이 좌선을 했다는 바위인 듯 하다.
오산은 지척이다.
정상을 지나고
정상 옆 팔각정과 전망데크가 있다.
바로 앞산 안장가튼곳이 오늘밤 보낼 박지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례읍과 우측으로 왕시루봉과 노고단.........
붓꽃이 지천이었다.
이곳이 오늘 하룻밤 보낼 장소이다
나무를 베어낸 곳 바로 아래는 절벽이지만
앞으로 확 트인 조망이 어느 호텔못지않다.
텐트를 세우고.
근사하지 아니한가?
텐트안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백운산이다.
텐트밖의 풍경
솔봉, 둥지리봉 멀리 백운산 자락.
술 한잔 마시고 텐트를 열고 산을 본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린다
잠시 텐트에서 나와 정상에 섰다
구례읍의 야경.
완주 순천고속도로와 황전 나들목근처
구례읍
구례는 예로부터 ‘세 가지가 크고 세 가지가 아름다운 땅’이라 하여 삼대삼미(三大三美)의 고장이라 했다.
삼대는 지리산, 섬진강, 구례들판, 삼미는 수려한 경관, 넘치는 소출, 넉넉한 인심을 말한다.
다시 텐트로 돌아왔으나 잠은 오질 않는다.
초저녁부터 울던소쩍새가 울기때문
하도 섧게 우니 밤잠을 이룰 수 없다.
오늘 밤은 더욱 피나게 운다. 피를 토하고 아예 그 피를 도로 되넘기며 운다.
옆 나무에서 울다 목이 메고 시들하다 싶으면 앞산에 가서 운다.
온 산과 골짜기에 진홍색 핏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만 같은 그런 밤이다.
'소월'님은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의 죽은 혼이 넋이 되어 운다고 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김 소월 '접동새' -
고요하고 적막한 산중에서 명상을 즐겨보려고 왔으나
술과 어수선함 등으로 바래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긴 밤이 지났다.
곧 비가 올 듯한 날씨.
잠자리를 서둘러 정리하고
소쩍새 슬피울던 잠자리를 뒤로했다.
사성암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