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짐바브웨의 속담인데 산에 드는 나에게 공감이 가는 말이다.
제석봉의 밤을 즐겨보려고 산길을 좀 길게 잡와봤다.
연속 드는 칠선이지만
가을이 깊은 계곡은 또 다른 감흥이 기다릴 것이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을 세며
가을의 계곡을 걷고 싶었다.
9시가 넘은 백무동은 가을색이 짙어졌다.
약간 스산하기도 하고.
겨울장비들로
배낭은 더 무거워져
창암능선 오를일이 부담이지만
경험에서 얻었듯이
몸은 곧 그 배낭무게에 익숙해 질것이다.
창암능선으로 오르는 길엔
어느새 색색의 단풍이 덮혔다.
그 푸근한 제석봉 산정에서
좋은 분들과 술 한잔 하고 싶었다.
몇주전 쏟아지던 폭우에
철수해야 했던 그 씁쓸함을
기어이 만회하고자.
두어번의 쉼끝에 창암능선에 섰다.
오름길이 힘든만큼
고갯마루에 섰을때의 반가움은
커진다.
여기서 제석봉골 입구까지는
그야말로 좋은 길
아름다운 길이다.
경사가 없어서도 그렇지만
호젓한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길이
한없이 정겹다.
더군다나 오늘은 단풍이 온 가슴을 노랗게 또 붉게 적신다
맞은편의 초암능과 지계곡은 단풍이 들불처럼 내려오고
그 모습을 다 볼 수없어 곁눈질만.
이런 산모롱이를 몇개를 돌아야 한다.
칠선에 가려면.
계곡물소리가 크게 들리면 칠선계곡이다.
이미 단풍은 900여미터 칠선폭포까지 내려왔다.
잠시 발길을 머물다가.......
백무동 출발한지 어느새 두어시간
그만큼 많이 쉬면서 왔다.
흐르던 땀은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식어버린다.
계곡을 휘돌아 내려오는 바람이 거세다.
만추의 계곡
폭포며 계곡은 낙엽이 그득.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한다.
겨울에 얼어죽지 않기위해 몸속 수분을 털어내고자
나무는 잎을 떨군다.
저 화려함은
어쩌면 한해의 생을 마감해야하는
마지막 축제가 아니라
모진 겨울을 이겨낸 후
또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색인지도 모르겠다
이 골짜기를 기어오르며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마음 한켠은 늘 두렵다.
정상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체력이 견디어 줄지..
그러한 맘고생과
몸고생을 치르며
비로소
정상에 섰을때
이렇게 오를수 있는 네 발에
감사를 한다.
적어도 내겐
지리산은 언제나 두려운 산이다.
능선까진 너댓시간의 수고로움 뒤에야
옛 길을 만났다.
오늘은 제석단 입구로 나왔네.
바람이 엄청 거세다.
사납다.
일기예보대로 천둥번개라도 오려는지.....
장터목이 정겹다.
다시 이곳에서 20여분을 더 올려야 한다
그래도 덩쿨이 없으니 오름길은 수월하다.
5시24분
목적지에 도착했다.
1808m 정상
백무동 500여미터부터여기까지.
푸근하리라 기대했던 정상은
광풍이 지나고 있어 황량하고 스산하다.
.
작은세개를 담고있는 프록켄타님.
제석봉에서
새로 마련한 물건인데 제석봉의 밤을 거뜬히 견뎌줄지?
지친 윤조를 청풍이 내려가 데려오고
바람속에서 플라이를 어렵게 설치한다.
나름대로 튼튼히 세웠는데
지리산 산정에서 부는 바람엔
보잘것이 없다.
전주는 아까부터 천둥번개에 비가 온다는데........
급히 국물안주를 만들어
두어잔을 마셨나?
먹구름과 함께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진다.
무섭게 들이친다.
침낭커버가 없는 윤조는 술도 마다하고
비박플라이에 누웠는데
들이치는 비에 술자리로 쫒기듯 나온다.
.
.
.
뭐야!
또 철수해야하는가??
술잔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와봤다.
랜턴빛에 비와 구름이 빠르게 지나간다.
불을 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어둠속에
폭풍우가 할퀴듯 지난다.
와락 육중한 공포감이 밀려와
랜턴을 밝히니
그새 바지는 젖었다.
갑작스런 한기에
다시 안으로.....
1시간 가까이 쏟아지던 비는 우박으로 변한다.
작은세개가 여분의 비박플라이로
한쪽을 막으니
더 거센 비바람도 견디어줄 것 같다.
이제야 겨우 안정을 찾고
간간히 북두칠성을 본 것 같다.
누군가 노래도 부른것 같다
바람소리에 노랫소리가
섞여었다.
술이 풍족했다.
.
.
.
요란했던 밤이 가고
아침
텐트구석엔 우박만 한우큼
더 큰 추위를 기다렸는데.
바람은 그렇게 아침까지 불었다.
천왕봉
제석봉 북사면
제석봉 전망데크로나왔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천왕봉을 다녀오고.
비온후 아침햇살은 눈이 부시다.
장터목에서남은 술 한잔 마셨더니
하산길이 또 즐겁다.
망바위의 가을
소지봉
참샘 가던길에
백무동 가던길에
그렇게 고대하던 제석봉의 밤을 보냈다.
체력보다 좀더 무리한 산행이어서
육체적으론 몸살을 앓을 것 같다.
그래도
그 비바람치던 제석봉에서
두려웠던 바람
그래서 잠자리는 더욱 아늑했던
그런 짜릿한 즐거움 때문에
그깟 몸살은
게임도 안될 것 이다.
힘들고 먼 길은 함께가자
* 산행일 : 2011. 10. 15 ~ 16(1박2일)
* 산행코스 : 백무동 - 칠선폭포 - 제석봉(1박) - 참샘 - 백무동
* 동행: 프록켄타님, 작은세개, 청풍, 윤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