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차례주 <신도주>
조선시대 우리나라 술의 종류는 한때 600여 종에 달했다. 집집마다 술을 직접 빚는 찬란한 가양주 문화의 시대였다.
하지만 오늘날 제대로 남아 있는 전통주는 고작 40종 남짓.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명맥이 끊겼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한국적이어야 할 차례상 위도 일본 술이 점령했다. 우리가 흔히 '정종'이라 부르는 '마사무네(正宗)' 등 사케가 차례주로 쓰였다. 전통 차례상 위에 일본식 술을 올린다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일. 마음 한쪽에 집안의 '열두 번째 종손'이란 짐을 진 기자로선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설을 2주 앞둔 지난 14일, 기자가 직접 서울 강남구 삼성동 국순당빌딩에서 열린 '설맞이 차례주 빚기 교실'에 참가해 차례주 빚기를 배우고 2주간의 가양주 제조에 도전해봤다. 이번 설에는 손수 만든 전통주를 차례상에 올려보고 싶어서다.빚는 법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다. 준비물은 햅쌀 1.5㎏과 물 2.25ℓ, 전통 누룩 150g, 밀가루 15g, 5ℓ들이 항아리, 찜 솥, 증자포(광목천), 체 등이다. 박선영 국순당 연구원은 "효소와 효모가 들어 있는 누룩이 핵심 재료"라며 "고소한 향이 나거나 아예 향이 나지 않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고 귀띔했다. 메주 같은 냄새가 나거나 색이 울긋불긋한 것은 썩은 누룩이라 골라선 안 된다.
누룩 고르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항아리와 양조 기구를 꼼꼼히 세척·소독하는 것이다. 옹기는 끓는 물 위에 뒤집어 놓아 수증기로 살균하고, 세정제를 적당히 탄 물에 20∼30분 동안 담가 세제 향이 사라질 때까지 여러 번 물로 씻는다. 본격적인 양조는 1차 담금용 백설기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햅쌀 500g을 씻어 2시간 이상 물에 불린 뒤 건져내 30분 정도 물을 빼고 분쇄기로 곱게 간다. 찜솥에 증자포를 깔아 쌀가루를 올린 뒤 감싸고 뚜껑을 덮어 약 1시간 가열한다. 증자포를 그대로 꺼내 백설기를 잘 펼쳐 식힌다.

블라인드를 친 작은 방에 집으로 가져온 술통을 놓고 온도를 발효에 최적인 25~27도로 올렸다. 이틀째부터 벌써 향긋한 술 냄새가 나며 거품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누룩 안의 효소가 쌀을 분해해 당분을 만들고, 다시 효모가 당분을 먹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는 과정이다.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저어주면 발효가 더 원활해진다는 말에 밖에서 술자리를 하고 들어가는 날에도 술통을 부여잡고 술덧을 꼬박꼬박 저어줬다. 그렇게 1차 담금을 한 지 3일째, 이제 2차 담금 '덧술'을 해줄 때다. 효모에 더 많은 먹이를 줘 술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햅쌀 1㎏으로 고두밥을 짓고 베란다에서 차게 식힌 뒤 백설기를 넣을 때처럼 작은 크기로 나눠 통 안에 넣었다. 물 1.25ℓ를 붓고 잘 섞은 뒤 다시 입구를 닫았다. 방 온도를 25~27도로 계속 유지하면서 발효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술을 저었다.
이렇게 약 9일째가 되자 서서히 공기방울 올라오는 속도가 줄고 술덧 윗부분에 맑은 층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발효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통상 열흘 정도 걸리기 마련이지만 온도를 27도보다 좀 더 높이면 발효가 더 활발해져 이처럼 빠르게 술을 빚을 수 있다. 발효 온도를 저온으로 유지하면 속도는 늦어지지만 술의 향이 더 풍부해지니 기호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완성된 술의 도수는 16% 안팎이 보통이다.
■ 전통 차례주 '신도주'
우리 선조가 수많은 전통주 가운데 최고의 차례주로 여긴 것은 이날 배운 '신도주(新稻酒)'다. '새 신(新)'자에 '벼 도(稻)'자를 쓴 이름대로 그해 처음 수확한 햅쌀 가운데 낱알이 실한 것만 골라 정성으로 빚는 술이다. 약간의 매운맛과 입맛을 당기는 산뜻한 신맛, 은은한 단맛 등이 조화를 이뤄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라고 한다.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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