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새벽시장 구경
어느 책에서 본
<여행을 하는 것과 병에 걸리는 것>
둘의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은 바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비록 1시간 정도밖에 여유가 없지만 순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남원역 7시53분 여수행 무궁화호는 8시 30분에 순천에 도착
순천역에서 9시44분 용산행 무궁화호로 올라오는 초 간단 여행.
아침 7시30분
싸한 공기가 가슴속까지 시려오는
기차역이 좋다.
보고싶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또 보내야 하는 아련함과.
좋아하는 사람과 편히 앉아 여행을 시작하는 셀레임이 묻어있는
그런 모습이 깊게 서리어서 그런지
기차역은 어디든 정겹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마저도.



순천
선암사가 있고
순천만이 있고
그런이유 말고도 순천은 이상하게 마음를 끄는 도시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김범우가 교도소에 갖히던 도회지.
예전 순천부사가 여수까지 관할하던 순천은 그만큼 땅이 넓어 지주들에겐 더 없이 풍족했던 도시이지만
반대로 백성의 입장에선 수탈당하여 서럽디 서러운 한이 흐르고 있어
마음이 끌리는 도시인지도 모르겠다.
순천가서 인물자랑 하지 말고
벌교가서 주먹자랑 말라던데
순천에서 인물 자랑이란 그 말은 2가지로 짐작된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일찌기 발달한 포목상과 비단장수의 교역덕분에
지주들과 그 자식들이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거리를 메워 나온 말이 아닌가 싶고
다른 하나는
경전선과 전라선이 교차하고
호남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가 만나는 교육,교통의 중심지이다 보니
여수,순천, 벌교,보성, 구례 등지의 수재급 학생들이 많이 모여들어
출중한 인물들도 많이 나와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전라도 팔불여<八不如 >란 말이 있는데그 8가지 중에
산불여구례(山不如求禮> 산은 구례만큼 큰 곳이 없고
지불여순천(地不如順天) 땅이 넓기로는 순천 만한 곳이 없다.
순천은 그 만큼 천석꾼 부자들이 많은 곳이어서
안팎으로 번지르르한 인물들이 넘쳤을 것이고
그 들에게 목숨을 맡긴 백성의 서러운 한은 높은 산과 들에 깊게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아내와 같이 전국 5일장을 돌아보는게 새로운 목표다.
태생이 태생인 만큼 5일장과 새벽시장은 항상 정이 묻어 나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시장에서 태어난것은 아니고.<^^>
오늘 여행 목적은 순천 새벽시장
순천에는 장이 세군데에 선다.
웃장과 아랫장,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인 순천역앞 도깨비시장이다.
새벽 4시경부터 인근 보성, 벌교, 장흥 등지에서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직접 가꾼 갓 등 푸성귀와 바다에서 갓 잡아온 꼬막, 박하지(돌게), 소라, 하모(갯장어)등이 천지를 이루는 오전만 잠깐 매매되는 곳이다.
요즘 제철인 벌교꼬막과 뻘낙지맛이 그리웠기도 했고.
순천역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면 바로 시장이 시작된다.
유난히 올해 풍년인 감, 그중에서 단감이 거리를 덮었다.






둘째가 좋아하는 순천 갓과 뻘뻘 살아서 기는 낙지, 그리고 꼬막을 사며
장구경을 마치고 9시40분 용산행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
나오다가 간판도 없는 허름한 집을 발견
새벽부터 지금까지 텅빈 속을 채우기로했다.
떡국3천원
시장식당답게
분위기는 어수선했지만
평생을 거친시장에서 살아오신 주인아주머니의 호탕한 목소리는
쩌렁쩌렁하다.



막걸리와 떡국을 주문하고
빈속의 식도를 타고 쩌르르하게 내려가는 막걸리잔을 기울이자니
할머니의 힘들었던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
나가 전라도 순창으로 시집을 갔재.
꼬치(고추)마니 나오는데 말여.
나 본댁(본가)은 여그 순천이여.
아 근디 아 셋을 낳아 모두 고만고만한 코흘리개인디
남편이 그만 죽어부럿어.
그때 집 한채 값인 오토바이를 덜컥사더만
낮이고 밤이고 싸 돌아 댕기더니
트럭을 받아 불고 즉사해 부럿재.
시집에선 여자가 잘못 들어와 아들이 죽었다고 난리가 났재.
서방 잡아묵은 년이라고.
밸수 있남?
코흘리개 셋 안고 업고
집을 나왔재. 숟가락 한개 읎이.
그라고 전주로 갔어.
그때부터 술장시, 밥장시 안가리며
새끼들 다 키워 시집장개 보내고
본댁인 여그로 와 이짓 하고 있는거여.
나가 올해 일흔 둘인디
의사말이 계속 허라 혀.
이런 일 안허믄 치매 오고 오래 못 산디야.
뒷태가 아가씨 같다는 아내말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시면서도
무생채 안주며 반찬거리를 계속 날라주시고
떡국엔 굴을 한우큼 더 넣어주셨다.
떡국 2그릇에 6천원
막걸리 1병에 2천원인데
만원짜리 한장 건네며
미리 선수를 쳤다.
'할머니 2천원은 다음에 와서 마실 막걸리 값 입니다.
자욱하던 안개가 어느새 다 걷혔고
기차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