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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사례<옮긴글>

산처럼 바람처럼 2015. 3. 18. 15:38

제목: 희망씨앗농장의 정영학대표

농촌사회 체험관광축제 2015-01-23 14:53:47

【귀농인 영농 스토리
운봉읍 화수리 주인공의 집 앞 목장에 산양 여러 마리가 몸을 부비며 여유롭다. 1977년생인 주인공은 4년 전 34살의 젊은 나이에 운봉읍 화수리에 산양을 키우는 희망씨앗농장 문을 열었다. 귀농 하던 해 결혼한 아내와 함께 귀농을 결심한건 오래전 꿈이었다. 주인공은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광주광역시 전남대에서 유가공학 석사학위을 받고 임실치즈 가공업체에서 5년여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한 직장에서 체험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아내를 만나 같은 꿈을 그리며 젊은 부부는 그렇게 운봉읍 화수리 지리산 자락에 집을 짓고 농장의 목동이 됐다.
 
【귀농인 영농 스토리】
♪파란하늘 파란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핸드폰 넘어 주인공의 컬러링이 동산으로 나를 부르는것 같다. 밝고 경쾌한 컬러링 통화 뒤 만난 주인공은 노랫말처럼 해처럼 밝은 얼굴로 반겨주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삼십대 후반의 네살배기 아빠인 주인공은 어딘지 모르게 해맑은 얼굴이 목동지기 소년처럼 보였다. 소설에 나오는 목동지기 소년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산양농장이라고 해서 넓은 초원을 생각했는데 마을 안쪽에 조그만 규모의 동산이 있는 농장이었다. 1,000평 정도의 작은 규모의 농장은 아기자기한 아기 산양과 잘 어울려 보였다. 600여평 남짓의 울타리 안 스무마리 남짓의 산양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 곳 운봉은 해발 500m 고산지대로 1970년대 대규모 면양목장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세월 속 면양목장은 없어지고 40여년이 지난 지금 주인공의 산양목장이 있었다.
 
주인공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십여년 전 순천에서 남원 아영면으로 귀농하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영면 근처 운봉읍으로 귀농을 했다.
 
순천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다 정년퇴임 후 귀농하여 제 2의 인생을 시작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도 하루 빨리 귀농을 하고 싶었다. 전공이면서 요구르트와 치즈의 전문가인 주인공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귀농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대학 시절부터 농촌에서 꿈을 펼쳐 보고 싶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농촌에서의 삶을 생각했다. 도시에 살면서 좋은 것도 있겠지만 시골생활에서 얻어지는 좋은 것들을 선택했다. 학업을 마치고 전공을 살려 임실치즈가공업체에 취직을 했다. 그렇게 5년여 동안 돈을 모아 결혼과 함께 아내와 귀농 계획을 세웠다. 처음 농장을 알아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마땅한 곳도 찾기 어렵고 산양을 기른다니 쉽게 반기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곳이 운봉 화수리 전촌마을이다. 이 마을은 이성계장군이 왜구를 무찌르고 세운 승전비와 조선 후기 국악의 명창 송홍록선생님의 생가가 있는 역사가 깊은 곳이다.
 
처음 농장을 시작하면서 마을 어르신들과 주민들의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마을에서 가축을 한두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를 키우는 농장을 한다고 하니 반겨줄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걱정 속에 산양을 기르기 시작했다. 산양은 다른 동물과 달리 깨끗한 것을 무척 좋아하는 동물이라 냄새도 많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마을분들께 공기공해가 있을까봐 조금 더 깨끗하고 청결하게 산양농정을 운영했다. 그리고 마을의 젊은 농부로 마을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앞장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렇게 노력하며 지낸 덕에 마을 구성원 한사람이 되어갔다. 처음 시골에서 어려운게 많았지만 지금은 모든게 너무 좋다고 한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 접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어려움도 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새로운 환경에 어려움이 있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본인이 풀어야할 숙제일 것이다.
 
주인공은 산양을 기르고 산양유를 가공 산양유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든다. 전문가답게 가공시설허가를 받고 가공업으로 소비자에게 믿을 수 있는 좋은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들어 판매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체험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약간의 참가비를 받고 치즈도 만들어 보고 산양농장 체험도 제공한다. 산양은 원래 온순한 성격이라 사람과도 잘 어울린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장난을 잘 받아줄 정도로 성격이 온순해 아이들과 쉽게 친구가 된다.
 
산양유는 일반 우유와 비교해 월등히 좋은 성분들이 가득하다. 차가운 성질의 일반 우유는 알레르기와 소화흡수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맞지 않지만 산양우유는 단백질 함량이 모유와 비슷하고 따뜻한 성질로 누구나 거부반응 없이 영양 섭취가 좋다. 그리고 방목해 자유롭게 뛰어 다니며 사료가 아닌 동산의 풀과 건초를 먹어 스트레스 없이 건강한 우유를 만든다. 또 새벽에 일어나 산양의 젖을 짜고 가공실에서 요구르트로 발효 시켜 신선할 뿐 아니라 맛과 건강에도 좋다. 홈페이지와 지인들의 소개로 판매를 하고 있다. 하루하루 많은 양은 아니지만 꾸준히 찾아 주시는 분들이 많다.
 
처음 귀농해 주위 분들의 격정도 많았다. 그걸로 먹고 살수 있는냐며 주위의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성실하게 농장을 운영 하니 큰 소득은 없지만 안정된 생활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해 한해 지나며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귀농 후 평화롭게 농장을 운영해갔다. 그러던 중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생겼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몸이 좋지 않은 이유를 피로 탓만 하다가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백혈병이었다. 귀농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자 정신없이 뛰어다니기만 했는데 너무 억울했다. 그렇다고 모든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 생각에 하루 빨리 일어나려 치료도 열심히 하고 몸 관리가 잘된 덕분에 2년여의 병원 치료 후 농장으로 돌아왔다.
 
농장도 집도 주인공의 손이 닿지 않아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욕심내지 않고 산양도 다시 돌보고 마당앞 텃밭에 감자도 심고 고구마도 심었다. 다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한 것이 올해 봄의 이야기다. 주인공을 만나러 간 지금 주인공은 감자 수확이 한참이다. 올해는 감자의 알곡이 크지 않다면서도 오랜만에 수확을 하는 주인공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2년여를 병원에서 지내다가 첫 수확을 하는 주인공이 얼마나 기쁠지 얼마나 행복할지 알수 있었다.
 
텃밭에 조금의 농사를 짓고 산양을 키우고 산양유로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들고 농장체험을 하고 주인공은 이 모든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다시 한번 느낀다. 병원에서의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어찌 이 모든 일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주인공은 일찍 귀농하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한다. 직장이라면 2년여의 병원생활 후 직장에 돌아 갈수 없었을 텐데 일찍 귀농해 내 농장이 직장이라 다시 돌아갈 곳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고 한다. 아마 직장에 다니다가 아파서 직장까지 잃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게 사람 살아가는 거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귀농한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2년여의 병원생활로 농장을 비운 주인공은 하루하루가 활기차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가 아니라 답답한 병원을 벗어나 자유로운 환경에 돌아왔으니 어찌 활기차고 즐겁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언제나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다. 혹자들은 하고싶은 일을 위해 바쁜 일상의 시간을 쪼개고 돈을 투자 해서 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주인공은 하고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항상 하면서 살아가니 행복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인것이다.
 
【에필로그】
요즘 현대인에게 성공이란 돈을 많이 벌어서 건물을 갖고 수입차를 타고 이런 것들이 성공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의 성공은 조금 다르다. 넒은 초원을 보며 아침을 시작하고 산양을 기르고 산양우유로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들고 주인공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정년없이 일하며 살아갈수 있다는 것, 아내와 아이가 항상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이게 곧 행복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항상 여유롭고 행복하다는 것 그것이 주인공의 생각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