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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매(스크랩)

산처럼 바람처럼 2014. 4. 3. 14:21

 

 

4그루뿐인 천연기념물 매화를 찾아… 探梅 기행

  •  선암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뒤편 편백나무 숲으로 향했다. 빛이 잘 들지 않는 숲 속. 해를 등지고 선 목련이 단 한 송이도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수줍은 봉오리를 물고 있었다. 이번 주말, 당신이 와주신다면, 그때 환하게 웃으며 피어날 수도 있겠지. 편지를 서랍에 넣어둘지, 봉투를 뜯을지 결정 여부는 결국 당신의 몫이다.

    탐매(探梅)는 곧 산사 체험이기도 하다. 꽃이 피고 지는 순간을 인간이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 율곡매는 이미 낙화를 마쳤다. 그러니 혹여 이번 주말 매화 꽃잎이 떨어졌다면, 순서대로 피었을 봄꽃과 천년 고찰을 즐길 일이다. 어느 절집이나 진입로 몇㎞ 구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천천히 걸으면서 감상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것을 추천한다. 선암사와 화엄사, 그리고 백양사다.

    순천 선암사 - 바랜 대로 닳은 대로 그 모습 아름답네

    절 앞의, 무지개 모양 아치형 돌다리 승선교(昇仙橋·보물 제400호)를 먼저 건널 것.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간다. 우리나라 절집이 빚어낸 최고 풍경 중 하나다.

    선암사 승선교. 무지개 모양 돌다리다.

    30여개 전각(殿閣)으로 꾸민 선암사는 1500년 세월을 오롯이 품은 조계산의 고찰. 미술사가 유홍준은 제 마음속 문화유산으로 한글·청자·산사를, 그중 산사의 대표로는 선암사를 꼽은 바 있다. 계단식 가람 배치다. 만세루에서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드러나고, 다시 한 계단을 오르면 팔상전, 여기서 또 한 계단을 오르면 원통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령 600년의 천연기념물 매화는 원통전 담장 뒤편에 있다. 그 오른쪽, 운수암 가는 담길에 백매 홍매가 어울려 피었다. 한국 토종 매화나무 50여그루가 부처님 미소처럼 환하다.

    꽃절 선암사는 여름까지 꽃이 지지 않는다. 3월 마지막 주말은 홍매, 백매와 목련, 그리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동백의 계절이었다. 이제 곧 영산홍, 자산홍, 처진올벚나무가 자신의 계절을 선언할 것이다. 그다음이면 모란꽃도 만개하겠지. 무량수각 앞에 길게 누운 650년 된 소나무, 칠전 차밭의 700년 넘은 차나무도 모두 선암사의 주인이다.

    단청은 바랬지만 바랜 대로, 나뭇결은 닳았지만 닳은 대로 아름다웠다. 아쉬운 것은 사찰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는 점. 뒷간으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선암사 해우소도 보수 중이었다. 건축가 김수근이 대한민국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는 그 뒷간이다.

    원통전의 소박한 모란꽃살문도 잊지 말고 보고 올 것.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으로, 선암사 원통전에는 조선 순조가 직접 대복전(大福田)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365일 템플스테이가 가능하다. 1박 2일 4만원부터.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 종무소 (061)754-5247

    그래픽=오어진 기자

    구례 화엄사 - 위엄 품었다 그러나 자연을 닮았다

    선암사에서 50여분 북쪽으로 달리면 화엄사다. 아침 8시 무렵, 화엄사로 올라가는 길은 안개가 가득하다.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인 화엄을 쉽게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일까. 일주문 약 1㎞를 앞두고, 거짓말처럼 안개가 사라졌다.

    화엄사 흑매. 검붉은 매화다.

    국보 제67호인 각황전 옆에 잘생긴 홍매 한 그루가 있다. 조선시대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판선사가 심은 것으로, 다른 홍매화보다 꽃 색깔이 검붉어서 흑매라고도 부른다.

    탐매가와 출사객이 아침부터 줄을 섰다. 탐매가 중에는 이 흑매를 남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이 매화가 천연기념물은 아니다. 천연기념물 화엄매는 절 뒤편 길상암으로 가는 길에 있다. 매화는 보통 접을 붙여 키우지만, 드물게 사람이나 짐승이 매실을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는 경우도 있다. 화엄매는 그런 경우다.

    대웅전 뒤편 오솔길에서 길상암 쪽으로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만난다. 계곡 물소리와 대숲 바람소리를 들으며 우선 10분을 걸으면 구층암이고, 다시 구층암 마당 끝 오른쪽으로 난 장독대 길로 5분여를 걸어가면 길상암이다.

    화엄사에서 위압을 느낀 당신이라면, 구층암의 편안함이 반가울 것이다. 구층암은 자연을 닮은 암자. 뜰에 자라던 모과나무가 죽자 그 나무로 기둥을 세웠다는 암자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곳. 이곳에서 할 일은 스스로를 낮춰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 전부다. 365일 템플스테이 가능.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 종무소 (061)782-7600.

    장성 백양사 - 겸손한 담장·계곡이 있는 절경

    백양사 쌍계루에서 내려다 본 풍경.

    화엄사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를 번갈아 타고 1시간 30분쯤 달리면 장성 백양사다. 연분홍 고불매는 대웅전 인근 우화루(雨花樓) 옆이다. 우화루는 꽃이 비처럼 내린다는 뜻. 꽃비집이다.

    절의 이름을 옮긴 다른 천연기념물 매화와 달리, 백양사 백양매는 고불매(古佛梅)라 불리는 까닭이 있다. 왜색불교 흔적이 남아있던 1947년, 백양사는 부처님 원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백양사 고불총림을 결성했다. 고불총림이란 옛 큰스님들이 모인 도량이라는 뜻. 고불(古佛)은 결국 옛 부처가 아니라 부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다.

    고불매는 외로운 한 그루지만, 한 그루 매화나무가 경내를 가득 채울 만큼 향기가 강건하다. 아래부터 셋으로 줄기가 갈라져 뻗었는데, 은은하면서도 단단하다. 봄 백양, 가을 내장이라 불릴 만큼 봄의 사찰.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의 꿈에 나타난 하얀 양(白羊)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전설이 있다. 꿈에서 백양은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 설법을 듣고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며 절을 했다고 한다.

    전각의 낮은 담장이 한없이 겸손하다. 대웅전 뒤편의 팔정도탑과, 절 앞에 있는 쌍계루(雙溪樓)에 꼭 올라 볼 것. 천진암 계곡과 운문암 계곡이 만나 빚어내는 풍경이 일품이다. 365일 템플스테이 가능. 1박 2일 4만원부터. 전남 장성군 북하면. (061)392-0434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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